내년 봄 이탈리아

마스크를 쓰고 벗어가며 커피를 마시던 시절이 전생의 일처럼 느껴지지만, 코로나가 참 여러 사람들의 인생에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. 오랜 시간 이탈리아 사회에 섞여 살면서 내가 외지인이라는 생각은 별로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(체류허가 갱신하러 가는 날 빼고), 만연한 전염병 공포에 “나도 데려가줘”라고 부탁하기 애매한 상황에 이르자 “여긴 내 집이 아니고 나는 혼자구나”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.

초기에 이탈리아가 직격탄을 맞았지만 그 전에는 코로나가 아시아에서 유행하다 사라질 신종플루 정도라고 다들 생각했습니다. 그래서 이탈리아에 감염자가 급증하기 시작하던 초반 다들 어버버버 하고 있었죠. 짐을 챙겨 시골 집으로 피난을 가겠다는 한 친구의 계획에, 다들 처음엔 “작작 오버해라” 라는 반응이었습니다. 그러나 시차를 두고 다들 여름 집, 스키 집 등을 향해 밀라노를 탈출했습니다.

피난을 간 친구들은 뉴스로 팬데믹 소식을 접하며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간을 보냈던 데에 반해, 저는 통행금지령이 내려진 밀라노 중심가 아파트에 3개월 넘게 홀로 감금생활을 하며 쌀, 콩, 통조림 등 장기 저장 식품으로 연명했습니다. 석 달 만에 처음 진짜 인간을 만나 대화를 나눴을 때는 너무 반갑고 감격스러워 눈물이 나더군요. 집에 에어컨 설치 견적을 내러 온 배관공이었습니다.

북미에서 배 타느라고 아직 한국에 제대로 정착을 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, 내가 이탈리아를 떠나기로 한 결정에도 코로나의 영향이 컸습니다.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점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서운할 정도로 여전히 이탈리아를 좋아합니다.

내년엔 몇 가지 해야 할 일도 있고 한 김에, 이탈리아에 세 달 정도 짝꿍과 함께 머물 계획입니다. 꼭 밀라노에 체류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어디에서 지낼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설레는군요. 이탈리아는 대도시를 벗어나는 순간 구석구석 아름다운 곳이 너무 많거든요.

코로나 때 1호로 피난을 간 친구 집 근처도 고려 대상입니다. 관광객으로부터 자유롭고 물가가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 음식 문화가 너무 후지지 않은 곳(이탈리아는 북부만 빼면 이건 대부분 충족)은 시골집이 있는 친구들에게 물어 보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더군요. 놀러오실 분 계신가요?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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